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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여행의 성지-겨울왕국 무주의 선물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1-01-28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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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무주가 빛나는 계절이다. 새하얀 눈과 환상적인 상고대로 뒤덮인 덕유산은 무주의 또 다른 이름. 두근두근 가슴 설레는 겨울왕국이 찾아왔다. 스키와 스노보드 등 신나는 겨울 레포츠에 머루와인과 뜨끈한 어죽 한 그릇 곁들이면 오감이 즐거운 무주의 겨울 여행이 완성된다.


‘Come With Me’라는 노래가 있다. 미국의 힙합 스타 퍼프 대디가 만든 명곡이다. 인트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파워풀한 드럼 비트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렬한 리프, 절정을 향해 치닫는 퍼프 대디의 숨가쁜 랩. 노래는 시종일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 음악이 뇌리에 깊게 새겨진 건 뜻밖의 장소였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주에서 세계태권도대회가 열렸고, 부대 행사로 펼쳐진 월드뮤직 페스타에 참여했던 나는 난생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정식 태권도 경기를 관람했다. 그때 무주 태권도원 T1 경기장에 힘차게 울려 퍼지던 음악이 바로 퍼프 대디의 ‘Come With Me’였다. 시합을 벌이는 선수들이 입장할 때마다 강력한 사운드로 쏟아지던 그 음악. 마치 목숨을 건 한 판 승부를 예고하듯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두근두근 설레던 가슴을 엄청난 마력으로 쿵쾅거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무주는 나에게 다가왔고, 지금까지도 그 음악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한 도시의 이미지가 음악 하나로 그렇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도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태권도로 만난 무주를 다시 찾은 건 지난여름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코로나 사태로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 향적봉에서 라제통문(신라와 백제의 경계이자 통로)까지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무주 구천동 계곡을 걷고 싶었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다가갈 수 없었고, 불현듯 몰아치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기엔 혼자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없었다. 그렇게 훌쩍 찾았던 무주에는 때마침 태풍이 몰려왔다. 급기야 구천동 계곡은 통제됐고 향적봉도, 백련담도, 구천폭포도 볼 수 없었다. 겨우 차로 접근할 수 있는 외구천동의 수경대와 라제통문 정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두 번째 무주여행.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자연의 섭리에 맞설 재간은 없는 것이니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자조 삼았던 여정이었다. 아쉬움으로 발길을 돌리던 바로 그때, 문득 생각난 노래도 퍼프 대디의 ‘Come With Me’였다. 나만의 무주, 그 도시의 메인 테마였던 그 노래가 쓸쓸한 발길을 위로해주었다.

세 번째 무주 여행은 계절을 하나 건너뛰고 난 다음이었다. 전대미문의 랜선 일출로 새해를 맞고 난 며칠 후,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로 지독히 추웠던 날이었다. 새해 첫날, 일출의 진경을 보진 못했지만 세상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점에서 새해의 기운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때문에 여전히 갈 곳이 없던 나를 덕유산으로 이끌었다. 지난여름 무주 구천동 트레킹이 무산됐던 아쉬움도 한몫을 했다. 생각해보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겨울의 무주, 겨울의 덕유산 풍경이 순식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입가에 미소가 스르르 번졌다. ‘그래~ 무주는 겨울이지!’

무주는 사계절 모두 ‘인상적으로’ 이름다운 곳이다. 보통 무주의 사계를 백련사의 봄, 구천동의 여름, 적상산의 가을, 덕유산의 겨울로 표현할 만큼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그때마다 최고의 풍광을 선사하는 곳이다. 그 가운데 무주의 겨울은 무주 여행의 백미로 꼽아도 좋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스키장으로 익히 알려져 있듯, 겨울에 더 흥미롭고 익사이팅한 곳이 그곳이다. 무주의 겨울은 반딧불이가 없어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덕유산에 하얗게 핀 눈꽃 하나만으로도 세상 전부를 이룬 것 같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곳, 무주의 겨울을 만나는 건 역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덕유산리조트의 곤돌라, 향적봉 가는 길의 눈꽃터널
사진설명덕유산리조트의 곤돌라, 향적봉 가는 길의 눈꽃터널


▶눈, 덕유산에서 꽃이 되다

덕유산은 해발 1614m로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자 우리나라의 12대 명산 중 하나다. 주봉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장중한 능선이 뻗어있으며, 전북의 무주와 장수, 경남의 거창과 함양 등 4개 군에 걸쳐 솟아올라 영호남을 굽어보고 있다. ‘덕이 많고 넉넉한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은 특유의 푸근함으로 세상을 감싸 안는다. 아름답기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구천동 계곡에만도 서른세 개의 비경이 있을 정도로 굽이굽이, 둘레둘레 빼어난 풍광을 지녔다.

순백의 눈꽃으로 빛나는 겨울왕국 덕유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고대와 설경을 뽐내는 덕유산의 겨울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압도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누군가는 덕유산의 겨울 풍경을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우는 곳’이라 칭송했을 정도로, 별천지이자 신세계로 다가선다. 겨울이 되면 덕유산은 무주의 다른 이름이 된다. 크고 높은 덕유산 정상의 환상적인 설경이 세상 모든 이들을 불러 모으기 때문이다.

덕유산을 아름답게 꾸민 순백의 눈꽃을 보기 위해선 산 정상인 향적봉까지 가야 한다. 구천동 계곡에서 향적봉까지는 약 8.2km의 긴 거리. 겨울엔 걸어서 5시간 이상은 족히 걸리는 멀고 험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과 1월 사이 덕유산을 찾는 여행자들이 무려 45만여 명에 달한다니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먼 길을 걸어 덕유산의 설경을 보러 간다고?’ 물론 그건 아니다. 덕유산에는 정상인 향적봉까지 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있다. 눈꽃으로 뒤덮인 겨울 덕유산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해발 1614m가 정상인 산의 턱 밑까지 곤돌라를 타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약한 체력으로 산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누구나 편하게 정상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곤돌라는 덕유산리조트 곤돌라 탑승장에서 시작, 해발 1520m 지점인 설천봉까지 올라간다.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약 600m 거리. 20~3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으니 정상까지는 식은 죽 먹기다. 곤돌라로 설천봉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약 15분.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엔 탑승자가 많아 대기시간이 길고, 그마저도 탑승 하루 전에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또 산 정상 부근의 기상 상황에 따라 운행이 취소될 수 있으니 사전에 문의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곤돌라는 수직 벽을 오르듯 가파르게 부상한다. 천천히 부드럽게 이동하는 곤돌라에서 바라보는 덕유산 자락의 풍광은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길게 이어진 스키 슬로프는 경쾌하고도 시원하다. 제법 긴 시간을 오르는 동안, 문득 문명의 이기 덕분에 훼손된 아름다운 덕유산의 자연을 떠올려본다. 남아 있는 절경에 감탄하는 인간의 욕심과 양심 사이, 일말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슬쩍 파고든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스키장을 만들 당시 이곳에 자생하던 수령 300~400년 이상의 주목과 구상나무 수백 그루를 옮겨 심었는데, 주상나무는 단 한 그루도 살아남지 못했고 주목 역시 반 정도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주목과 구상나무가 덕유산의 상징과도 같다는 걸 감안한다면 참 쓸쓸해지는 얘기다. 사람과 자연의 슬기롭고도 바람직한 공존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덕유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든 안타까움이다.

미안함도 잠시, 곤돌라에서 내려 마주한 설천봉의 풍경은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설천봉 앞에 멋진 자태로 서있는 상제루와 그 뒤로 보이는 향적봉의 전경은 상상 속 천상의 비경 그대로가 아닐까 싶을 만큼 신비롭다. 눈발은 연신 날리고, 안개는 구름처럼 흘러 다닌다. 안개와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맥의 줄기는 일필휘지의 기상을 닮았다. 이곳에 오르기 전, 이런 그림을 과연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입에서는 그저 ‘아~’ 하는 탄성만 흐를 뿐이다.

하얗게 뒤덮인 눈을 밟고 향적봉으로 향한다.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바로 눈앞에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몇 발짝 걸음을 내딛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 유명한 덕유산의 상고대다. 상고대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미세한 물방울로 변한 뒤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것을 말한다. 특히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얼어붙어 마치 눈꽃처럼 피었다는 의미에서 ‘수상’ 혹은 ‘나무서리’라고도 하고 ‘서리꽃’으로 부르기도 한다. 상고대가 피려면 보통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이어야 하고, 영하 6도 이하에 습도가 90% 이상 되어야 한다. 산이 높고, 그 아래로 금강이 흐르는 덕유산은 상고대가 만들어지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서해의 습한 대기가 높은 산을 넘으며 눈을 만들고, 겨울 내내 쌓여 있어 최고의 설경을 연출한다.
숙박이 가능한 향적봉 대피소, 향적봉 대피소 가는 길
사진설명숙박이 가능한 향적봉 대피소, 향적봉 대피소 가는 길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가는 길은 순백의 풍경화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터널처럼 이어진 길은 눈꽃과 상고대의 천국. 한 발짝도 쉽게 내딛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설경에 넋을 잃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겨울왕국의 모습이다. 마치 꿈길을 걸어온 것만 같은 황홀한 여정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길이지만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저절로 카메라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절경이 수도 없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시간도 넉넉히 필요하다. 그렇게 향적봉에 오르면 가까이 중봉부터 적상산, 남덕유산, 민주지산, 가야산,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끝없이 이어진 능선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사방팔방이 무엇 하나 막힘 없이, 거침없이 펼쳐지고 가슴은 뻥 뚫려 차가운 칼바람마저 신선하게 느껴진다. 새하얀 눈 세상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만 가도 더 이상이 없을 것 같은 완벽한 눈꽃 세상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욕심을 내서 중봉까지 다녀오길 권한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는 1.1km. 역시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가는 길은,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오는 길과는 또 다른 느낌과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눈꽃과 상고대가 만발한 건 마찬가지지만 덕유산의 상징인 주목과 깃대종인 구상나무가 하얀 눈과 어우러진 또 하나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눈으로 뒤덮인 아고산대(온대의 산악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진 식물의 수직분포대)와 덕유평전(덕유고원)을 바라보며 꽃이 만발한 봄, 여름의 풍경을 가늠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덕유산 제2봉인 중봉에 올라서면 남덕유까지 이어진 새하얀 능선길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어지게 만드는 절묘한 풍경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모습과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산하를 굽어보는 기분은 역시나 황홀하다.

덕유산의 눈꽃 산행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답고 황홀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도 많다. 산 정상부의 체감 기온이 평지보다 보통 20도 정도 낮기 때문에 방한복과 등산화를 제대로 갖춰야 하고 특히 눈길이 미끄러워 아이젠과 스틱은 반드시 챙겨 가야 한다. 산행 후 곤돌라로 하산할 경우, 마지막 탑승 시각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향적봉과 중봉 사이에는 향적봉 대피소가 있으니 그곳을 유용하게 활용해도 좋다. 예약자에 한해 숙박도 가능하고, 취사도 가능한 곳이다. 산행 도중에 컵라면이나 커피 등을 사서 먹을 수도 있다. 4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대피소로 덕유산의 일출 혹은 일몰을 보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던 라제통문
사진설명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던 라제통문


▶무주 구천동 33경, 제1경 라제통문

덕유산을 내려와 구천동 33경이 시작되는 라제통문 앞에 섰다. 구천동 계곡의 가장 꼭대기이자 제33경인 향적봉을 보고 왔으니 그 시작점인 제1경을 봐야만 했다. 라제통문부터 구천동 계곡의 끝자락인 백련사까지는 꽁꽁 얼어 있다. 지난여름에도 구천동 계곡을 걷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꽁꽁 얼어 비경을 감춘 그 길을 걷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구천동 33경을 걸어서 만나는 기회는 무주가 자랑하는 ‘구천동의 여름’으로 미루기로 했다.

구천동 33경의 제1경인 라제통문은 살을 에이는 듯한 혹한에도 건재하다. 석견산 아래 암벽을 뚫어 만든 통문이어서인지 오랜 역사에도 굳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라제통문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뤘던 역사의 통로로 통한다. 삼국시대에는 석견산 바위 능선을 경계로 동쪽의 무풍은 신라 땅이었고, 서쪽의 설천과 적상, 무주는 백제 땅이었다. 작은 바위산인 석견산 능선으로는 본래 설천과 무풍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무주에서 김천과 거창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개설하면서 우마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굴을 뚫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었다는 역사적 배경에 따라 신라의 ‘라’와 백제의 ‘제’를 따서 ‘라제통문’이라 부른다. 또 삼국의 통일전쟁 무렵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드나들었다 하여 ‘통일문’이라고도 불린다.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이뤘던 곳인 만큼 이곳은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바친 격전장이었을 것이다. 라제통문 앞 다리 아래 원당천에 ‘파리소(沼)’라는 연못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당시의 전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쟁 때 시체가 산처럼 쌓여 파리가 모여 들었다는 연못이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내천에서 백제와 신라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두 나라의 국경이자 격전지이기도 했던 라제통문은 글자 그대로 ‘백제와 신라가 서로 통하는 문’이란 뜻도 있다. 서로 다른 풍속과 문물을 교류하는 현장이었고, 그것은 고려시대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제통문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신라 지역이었던 무풍면 사람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서쪽의 백제 지역이었던 설천면 사람들은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했다고 하니 경계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지금도 설천 장날에는 무풍과 무주, 두 지역의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라제통문과 백련사를 제외하곤 모두 자연의 비경이다. 눈꽃으로 절정을 맞은 향적봉까지, 세 곳의 비경 말고는 지금 이 계절에 제대로 만날 수 없는 곳들이다. 구천동 33경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껴보기 위해선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숲이 짙어지고 계곡에 물이 불어 보기 좋게 흐를 때 구천동의 33경이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춘다. 무주의 여름을 구천동 33경 여행의 적기로 여기는 이유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구천동 계곡은 신록으로 생기가 돈다. 그리고 마침내 여름이 되면 안식년과 같은 1년을 보낸 구천동 33경은 천혜의 자연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구천동 33경을 온전히 걷는 길도 아직은 미완성이다. 제1경인 라제통문에서 14경인 수경대까지 가는 길은 트레킹 코스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제15경인 월하탄에서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내구천동의 ‘구천동 어사길’은 아직 조성 중이다. 제26경인 신양담에서 백련사까지, 남은 1.7km 구간만 마무리하게 되면 ‘걷기 좋은 길’이 완성된다. 그렇게 되면 미뤄두었던 구천동 33경을, 구천동 계곡길을 따라 걸으며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무주의 여름이 기다려진다.
독일가문비나무숲의 산책로
사진설명독일가문비나무숲의 산책로


▶동화 속의 바로 그 풍경, 독일가문비나무숲

무주의 겨울을 빛나게 하는 숲이 있다. 구천동 계곡 입구에서 거창 방향으로 4㎞ 정도 가면 국립덕유산자연휴양림이 있고, 그 안에 보물과도 같은 특별한 숲이 있다. 덕유산자연휴양림만 해도 울창한 숲과 깨끗한 공기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기가 막힌 자연인데 그 안에 더 특별한 것이 있다니 궁금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딜 가나 숲 하나만큼은 잘 지키고, 게다가 잘 가꾸기까지 했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42개의 국립 자연휴양림과 28개의 치유의 숲은 사람과 자연을 유익하게 잇는 산림 복지의 훌륭한 자산으로 인정받곤 한다. 그것을 주도하는 산림청에서는 매년 국유림 명품숲과 ‘아름다운 숲’을 선정한다. 지난 201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 분야 ‘어울림상’을 수상한 숲이 덕유산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바로 그 ‘독일가문비나무숲’이다. 이 숲은 1931년 외래 수종의 생육에 맞는 지역을 찾기 위해 시험적으로 조성된 이후 한국전쟁과 수많은 격동의 역사를 거치는 90년의 긴 세월 동안 덕유산 자락을 묵묵히 지켜왔고 마침내 아름다운 한국의 숲으로 자라났다.

이름부터가 이국적인 독일가문비나무는 소나무과 상록교목으로 유럽이 원산지인 대표적인 침엽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들과 달리 큰 키와 미끈한 풍모를 자랑한다. 유럽 그림동화의 숲속 풍경을 이루는 삼각뿔 모양의 곧고 키가 큰 바로 그 나무다. 덕유산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이 숲에는 약 150여 그루의 독일가문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나무가 군락의 형태로 숲을 이루는 유일한 곳이며, 생태·환경적 보전가치와 학술적 연구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름다운 숲속의 더 아름다운 숲, 독일가문비나무숲은 덕유산휴양림 내 자연관찰로 끝에 조성되어 있다. 안내센터를 지나 왼쪽으로 난 자연관찰로를 따라 40~50분 정도 걸으면 독일가문비나무숲이 나온다. 큰 길을 따라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불과 5분 만에 숲 앞에 닿지만, 삼림욕 겸 산책 삼아 자연관찰로를 걷다 만나는 숲은 몇 배의 감동으로 다가선다.

독일가문비나무숲은 겨울에 더욱 멋진 자태를 드러낸다. 낙엽이 지고 난 후, 변함없이 푸르고 짙은 초록으로 빛나는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감동적이다. 그 나무 위로 함박눈이라도 내려 덮여준다면 평화로운 크리스마스의 정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휴양림의 숲과 자연은 언제 찾아도 좋지만, 덕유산자연휴양림만큼은 독일가문비나무가 더욱 빛나는 겨울이 좋다. 무주의 겨울을 찾아가는 여행객들이라면 반드시 들려봐야 할 멋진 풍광의 숲이다. 숲 사이로 난 산책로는 세상 편안하다. 짙게 내뿜는 나무 향과 청량한 숲속 공기는 지친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거둬갈 만큼 상쾌하다. 느릿느릿 숲길을 걸으며 잠시 사색에 젖어도 좋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되는 곳. 모처럼 경험하는 호사가 따로 없다. 이곳을 한 번이라도 찾게 된다면, 그 느낌과 감동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핫한 무주의 랜드마크

▶태권도원
세계적으로 무주를 알린 태권도원은 지금 임시 휴관 중이다. 웬만한 공공기관들이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라 부분적 개방을 하고 있지만, 태권도원의 가동은 좀 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되고 나면, 무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이곳이다. 태권도 종주국의 자부심으로 세워진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문 공간으로 경기장과 함께 수련, 교육,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고, 태권도 상설 시범공연과 상설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태권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국립 태권도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태권도원 투어를 하는 프로그램과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 아름다운 무주의 경치를 즐기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위치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산119-3 운영 시간 동절기 10:00~17:00(주말·공휴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반디랜드
청정 무주를 상징하는 반딧불이는 무주의 자랑거리다. 반디랜드는 반딧불이의 서식지에 만들어진 테마파크로 청정한 무주의 자연과 함께 하는 관람, 체험, 교육, 휴양 공간이다. 반딧불이의 고장 무주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다. 반딧불이와 함께 2000여 종 1만7000여 마리에 달하는 전 세계 희귀 곤충 표본을 만날 수 있고, 또 곤충의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장소다. 무주의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천문과학관과 생태 온실, 아쿠아존, 수련원과 청소년 야영장도 마련되어 있다.

위치 전북 무주군 설천면 무설로 1324 운영 시간 동절기 09:00~17:00(곤충박물관) 13:00~21:00(천문과학관), 월요일 휴관

무주의 재발견

▶김환태문학관&최북미술관
무주읍에서 만난 보석과도 같은 공간이다. 평론가 김환태와 화가 최북. 그곳에서 그들을 마주할 수 있다니. 어쩌면 이번 무주 여행에서 경험한 놀랍고도 감사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눌인 김환태는 일제강점기에 순수문학의 이론 체계를 정립한 문학평론가다. 한국 비평문학의 효시이자 암울한 시대에 애국적 삶으로 한국 문단 밝혀준 평론가로 알려져 있다. 무주 출신인 그는 보성고보 시절, 시인 이상과 교사로 재직 중이던 김상용과의 교류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키웠고, 일본 유학 시절 시인 정지용을 만나 문학적 친교를 맺게 된다. 귀국 후인 1936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박팔양, 김상용, 정지용, 이태준, 박용철 등과 활동했다. 일제의 국어말살정책과 친일문학이 확산되던 1940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1943년 폐병을 얻어 귀향한 후 그 다음해에 영면에 들었다. 김환태문학관에는 그를 기리는 각종 사료와 책자 등 약 40여 점이 기념물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으로 알려진 최북(1712~1786) 역시 무주 출신의 화가로 본관은 무주, 호는 호생관이다.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을 선호하는 당시의 경향을 비판하고 조선의 산수를 그린 진경산수화로 조선 후기 회화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평소 산수와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산수’, ‘최메추라기’라고 불리기도 했던 그는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는 벼슬아치 앞에서 스스로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자존감이 강했던 예술인이었다. 미술관에는 최북의 원본 그림과 영인본 등 다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위치 전북 무주군 무주읍 한풍루로 347 운영 시간 09:00~18:00, 월요일 휴관

▶머루와인동굴
무주 여행을 향긋하게 만드는 게 있다. 바로 무주 특산품인 머루로 만든 와인이다. 무주는 국내 최대 머루 산지로 110개의 머루 농가와 5개의 머루와인 업체가 손잡고 머루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적성산 기슭에 있는 머루와인동굴은 이 와인들을 한 자리에서 맛보고 구입할 수도 있는 곳이다. 머루와인의 숙성과 저장,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270m의 동굴을 흥미로운 와인 테마 공간으로 꾸며 무주를 찾는 여행객들 대부분이 들렀다 가는 명소가 됐다. 동굴의 끝부분에는 머루와인을 이용한 족욕카페를 마련해 놓았다.

위치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359 운영 시간 동절기 10:30~16:30, 월요일 휴관

무주, 이곳

▶향로산자연휴양림
말로만 듣던 트리하우스를 이곳에서 만났다. 나무 위에 지어놓은 집의 형태를 그대로 갖춘 공간으로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그뿐 아니다. 높은 산 언덕에 동굴집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숙소도 만들어 놓았다. 좀 더 프라이빗하면서도 특별한 공간이다. 지난 2017년에 문을 연 향로산자연휴양림은 기존의 휴양림과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휴식 공간을 꾸미고, 향로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왕복 1.5km의 모노레일과 패러글라이딩 체험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여행객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지루하지 않게 무주의 자연을 경험하면서, 보다 즐겁게 쉬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적합한 곳이다.

위치 전북 무주군 무주읍 무학로 153-36

무주의 맛

▶소문난 시골순대
오래 됐다고 다 맛있는 집은 아니지만 이 집은 다르다. 무주 반딧불시장의 대표적인 맛집인 이곳은 막창에 선지를 넣어 만든 피순대를 전문으로 하는 국밥집이다. 국밥도 다양하다. 시골순대국밥을 기본으로, 시골순대따로국밥, 오소리감투국밥, 머릿고기국밥, 새끼보국밥 등 마치 국밥 뷔페처럼 취향껏 주문할 수 있다. 순대국 특유의 잡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입이 짧고 까다로운 도회지 젊은 청춘들까지 엄지를 치켜들 정도로 깔끔한 맛으로 정평이 나있다. 양도 푸짐하다. 다만 아무 때나 가도 널널하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접어둘 것. 무주 ‘산골’의 허름한 식당이지만 몇 십 분의 웨이팅은 기본이다.

위치 전북 무주군 무주읍 장터로 2

▶무주어죽
무주에 가면 무주만의 특색을 지닌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 금강에서 잡은 빠가사리와 동자개, 꺽지, 메기 등의 민물고기를 푹 고아 만든 어죽은 이제 무주의 시그니처 음식이 되었다. 특히 추운 겨울날, 뜨끈한 어죽 한 그릇이면 얼었던 몸이 녹고 배도 든든해진다. 문제는 비린내인데 36년 이상, 온갖 노하우를 터득해서 만든 비법 육수로 맛을 내니 걱정 붙들어 맬 것. 대표 메뉴인 빠가어죽은 물론이고 비린내가 심해 아무나 만들기 어렵다고 하는 쏘가리어죽까지, 영양 만점의 어죽 한 그릇을 찾아 먼길 마다않고 달려오는 식도락가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죽과 함께 곁들여 먹는 도리뱅뱅이의 맛도 일품이다.

위치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로 119
 
출처 : 매일경제 (h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1/89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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